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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한국여성기술사회장, 힐링봉사로 취약계층 소외감 해소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 쪽방촌 앞 제과점에 세련되고 당당한 전문직 여성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들은 일사분란하고도 저돌적인 열의로 체계적인 조직을 구성하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자신의 업무와 규칙 등을 숙지한 21명의 여성은 마치 가을 소풍이라도 가듯 즐거운 발걸음으로 영등포 쪽방촌으로 향했다.
이들은 여성기술사회와 여성건축가협회, 여성한의사회 회원들로 취약계층이 머무르는 열악한 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은 물론 굳게 닫힌 취약계층의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는
말그대로 ‘힐링 봉사단’이다.
보수가구 점검팀과 쪽방 취약상태 점검팀, 식사준비팀 등으로 조를 나눈 ‘힐링 봉사단’은 쪽방촌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보수가구 점검팀은 2개조로 나눠 쪽방촌 내 보수가 필요한 가구의 문제점을 콕콕 짚어냈다.
쪽방 취약상태 점검팀은 3명씩 1개조로 사진을 촬영하며 안전사고 발생이 가능한 곳을 안전점검표에 꼼꼼히 기록했고 식사준비팀은 쪽방촌 주민들의 저녁식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날 오후 2시에 시작된 힐링 봉사단의 활동은 밤 9시가 훌쩍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봉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미란 여성기술사회장(㈜대성그린테크 대표이사·기술사)을 만나 해비타트, 1사 1촌 자매결연, 희망도시락, 벽화 그리기, 사랑의 연탄, 김장담그기 등
흔히 행해지는 봉사활동과는 다른 감성봉사의 특별한 매력을 들어봤다.
그는 감성봉사를 한마디로 ‘힐링봉사’로 압축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힐링봉사는 애초 의도된 건 아니었다.
여성기술사회의 봉사활동은 700여명에 달하는 국내 여성기술사들의 전문성을 활용해 취약계층의 열악한 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차원에서 먼저 시작됐다.
안전점검을 위한 답사, 워크샵, 안전진단 가이드라인 작성 등 사전준비 과정에서도 ‘힐링’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취약계층 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을 직접 실시하면서 ‘힐링’이 자연스레 동반됐다.
이 회장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힐링봉사는 기술사이기에 앞서 여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쪽방촌 주민들은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여성기술사회 회원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며 “하지만 여성들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성으로 오랜 시간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여성기술사회 회원들에게 취약계층에 대한 봉사활동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과 취약계층의 차가운 태도는 열의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엔지니어로서 강한 의지를 갖고 해낸다는 믿음으로 다가가자 굳게 닫힌 문도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처음에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경우가 많았다”며 “취약계층을 매주 찾아가 얘기하면서 여성기술사들이 잠재된 능력을 십분 발휘해 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기술사회의 봉사활동이 일반적인 봉사활동과 다른 것은 ‘힐링’과 함께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여성기술사회는 토목, 건축, 환경, 전기, 설비 등은 물론 의료,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여성기술사들로 구성돼 있다.
일상 생활에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봉사활동이 아니라 분야별로 모든 엔지니어가 참여해 각자의 재능을 기부한다는 데서 단편적인 봉사활동과는 차별화된다.
그는 “분야별로 각각 다른 기술사들이 모여 기술을 확산시키는 방향을 찾아보자는 공감대를 형성한 게 감성봉사의 계기가 됐다”며 “화재가 발생한 보육원, 무너지는 요양원 등을 보며 이런 사고를 사전에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고 말했다.
여기에 여성건축사협회와 여성한의사회 회원들이 힘을 보태면서 완성형 봉사활동이 가능해졌다.
여성건축가협회 회원들이 전반적인 건축에 대한 자문을 해주고 여성기술사회 회원들이 분야별 진단을, 여성한의사회 회원들의 의료봉사로 봉사활동의 시너지 효과를 더했다.
그는 “취약계층 시설에는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어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며 “여성건축가협회와 여성기술사회 회원들이 위험을 없애고 여성한의사들이 침과 뜸으로 치료해주면서 시너지효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번 쪽방촌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 주변에 쪽방촌보다 더 열악한 시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여성기술사회의 힘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얘기다.
때문에 그는 고아원, 요양시설, 장애인시설 등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복지시설은 물론 소외된 취약계층 시설 발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생활필수품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취약계층의 생명과 직결된 시설 안전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만큼 이 회장은 취약계층 시설 발굴과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취약계층 시설에 대한 봉사활동이 안전점검이 아닌 개선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현재까지 여성기술사회가 지원받은 금액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으로부터 받은 2000만원에 불과하다.
취약계층 시설은 노후된 만큼 개선에 필요한 자금도 만만치 않다.
겨우 2000만원으로는 여성기술사회 회원들의 열정을 채울 길이 없다.
이에 이 회장은 여성기술사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힐링’이라는 감동이 여성기술사들의 주머니를 저절로 열게 하는 것이다.
그는 “취약계층 시설 안전점검과 감성봉사의 한계는 부족한 지원금액”이라며 “여성기술사회 회원들이 힐링봉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다면 지원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위해 노력하는 여성기술사회 회원들을 지켜봐 달라”며 “마음의 문을 열고 더 많은 관심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박경남기자 k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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